강의 4-2: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자연법과 국가론: 혼란기 속에서 질서와 공공선을 세운 사상 (1/2)
제1강에서 우리는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비폭력과 순교, 그리고 이웃을 향한 희생적 환대로 세상을 정복했던 초대 교회의 윤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마침내 로마의 국교(380년)로 자리 잡으면서 교회는 완전히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는 검투사 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뜯어 먹히던 사형수들이었는데, 오늘부터는 제국의 장군이 되고 법관이 되며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핍박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킬 것인가?"를 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 국가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이교도들의 침략으로부터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칼을 드는 것은 정당한가?", "세속의 법령(국가법)과 하나님의 법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공적 윤리의 과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 중대한 역사의 전환기이자 혼란기(로마 제국의 멸망과 중세의 태동) 속에서, 기독교가 세상과 도피하지 않고 공공의 질서(Order)와 공공선(Common Good)을 세우도록 거대한 사상적 기초를 놓은 두 명의 영적 거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5세기의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354-430)과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입니다.
What these 14 minutes give you
- 어거스틴의 '두 도성' 이론이 그리스도인의 국가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 어거스틴의 정당 전쟁론의 세 조건(정당한 원인, 합법적 권위, 올바른 의도)을 서술할 수 있다.
- 아퀴나스의 네 가지 법 체계, 특히 자연법 개념과 그 공공 윤리적 함의를 설명할 수 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에베소서 5:25
제1절. 어거스틴의 《신국론》: 무너지는 제국 앞에서의 윤리적 응답
주후 410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마 제국의 심장, 로마 시가 야만족인 서고트족(알라릭)에 의해 함락당하는 대사건이 발생합니다. 세상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로마의 이교도들은 이 재앙의 원인을 기독교 탓으로 돌렸습니다. "우리가 로마의 전통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신들이 노하여 로마가 멸망했다!"
이 거대한 사상적 위기 앞에서, 북아프리카 히포의 이었던 은 기독교 윤리와 역사관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방대한 저작 《신국론(De Civitate Dei, 하나님의 도성)》을 집필하여 이교도들의 비난을 반박하고 그리스도인의 역사적 책임과 윤리를 재정립합니다.
1. 두 도성 (The Two Cities): 사랑이 시민권을 결정한다
어거스틴은 인류 역사를 단순히 로마와 야만족의 대결이 아니라, 적으로 다른 두 개의 도성, 즉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의 영적 전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두 도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혈통이나 국적이 아니라 바로 '무엇을 사랑하는가(근본적 욕망)'입니다.
지상의 도성 (인간의 도성):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Amor sui)"들의 모임입니다. 이 도성의 본질은 이기적인 탐욕, 권력욕, 자기 과시, 그리고 지배욕(Libido dominandi)입니다. 바벨탑과 로마 제국이 그 대표적 상징이며, 이들은 궁극적으로 멸망을 향해 갑니다.
하나님의 도성: "자신을 멸시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Amor Dei)"들의 모임입니다. 이 도성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 이웃을 향한 사랑, 겸손, 그리고 평화입니다. 이 도성의 시민들은 이 땅에 살지만 본향을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순례자)'들입니다.
[윤리적 적용]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제국(국가)을 와 동일시하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어떤 위대한 제국이나 정치 체제도 지상의 도성일 뿐,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충성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의 법을 거스를 때는 단호히 하나님을 우선하는 '이중 국적자'의 거룩한 긴장을 가져야 합니다.
2. 필요악으로서의 국가와 '지상의 평화(Pax)'
그렇다면 한 욕망으로 가득 찬 지상의 도성(국가)은 폐기되어야 할 무가치한 것입니까? 어거스틴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내버려 두면 서로를 물어뜯고 죽이는 무정부 상태(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빠질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무질서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일시적인 '지상의 평화(Temporal Peace)'를 유지하도록 '국가'라는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어거스틴에게 국가는 악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필요악(Necessary Evil)' 혹은 '치료제'였습니다. 국가는 강제력(형벌과 법)을 사용하여 범죄를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성 시민들이 이 땅에서 평화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제2절. 어거스틴의 정당 전쟁론 (Just War Theory)
기독교 공인 이후 가장 실천적인 윤리적 딜레마는 '군 복무'와 '전쟁'이었습니다. 초대 교부들(터툴리안 등)은 그리스도인이 군인이 되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절대 평화주의). 그러나 이제 야만족이 쳐들어와 무고한 시민들과 여성, 아이들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기독교인 로마 황제와 장군들이 "원수를 사랑하라"며 칼을 버리고 무저항으로 학살을 방관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 윤리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정당 전쟁론(Bellum Justum)'의 뼈대를 세워 이 딜레마에 응답합니다. 그는 전쟁은 본질적으로 비극이며 피해야 할 악이지만, '더 큰 악(무고한 약자의 학살)'을 막기 위해 끔찍하지만 불가피하게 무력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어거스틴이 제시한 정당 전쟁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당한 원인 (Just Cause): 영토 확장이나 약탈, 복수심을 위한 전쟁은 살인 행위입니다. 오직 방어적 목적, 빼앗긴 것을 되찾는 일, 부당하게 공격받는 약자를 구출하기 위한 경우에만 정당합니다.
합법적 권위 (Legitimate Authority): 개인적인 원한으로 칼을 드는 것은 금지됩니다. 오직 공 질서를 책임지는 합법적인 통치자(국가)만이 전쟁을 선포할 권한을 갖습니다.
올바른 의도 (Right Intention): 이것이 어거스틴 윤리의 핵심입니다. 비록 총칼을 들고 적과 싸우더라도, 군인의 내면에는 '잔인성, 복수심, 권력욕'이 있어서는 안 되며, 오직 평화를 회복하고 악을 교정하려는 '사랑(Love)'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적 의의] 어거스틴의 정당 전쟁론은 이후 에 의해 정교해졌고, 오늘날 국제법(UN 헌장)과 제네바 협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을 찬양하는 이론이 아니라, 폭력의 시대로부터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고 전쟁의 잔혹성을 통제(제한)하기 위한 치열한 기독교적 '공공 윤리'의 산물입니다.
제3절. 토마스 아퀴나스와 은혜-자연의 종합
어거스틴 이후 약 800년이 흐른 13세기 중세 유럽은 또 다른 거대한 사상적 지각 변동을 겪게 됩니다. 십자군 전쟁과 아랍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문헌들이 서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성경이나 하나님의 없이도, 인간의 '(Reason)'과 자연 관찰만으로 이 세상의 이치와 정치, 윤리를 완벽하게 설명해 내는 듯 보였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자들은 이 거대한 세속 학문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정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천재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위기 앞에서 도피하지 않고, 기독교 신앙과 세속 철학(이성)을 완벽하게 통합해 내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기독교 신학의 대백과사전인 《(Summa Theologica)》입니다.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이 위대한 는 아퀴나스 윤리학의 심장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을 강조하여 '세속(자연)'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아퀴나스는 타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이성과 도덕을 인식할 수 있는 '자연적 본성'이 여전히 선하게 남아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성경, 계시)는 인간의 이성이나 세속적 질서(자연)를 억압하거나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구원의 한계를 보완하여 가장 아름답게 '완성'시켜 주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세속 학문, 과학, 정치, 철학은 신학의 적이 아니라, 신학을 섬기고 진리를 탐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제4절. 아퀴나스의 4가지 법과 자연법 (Natural Law) 윤리
아퀴나스는 이 세상이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질서(법)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고 보며, 법을 네 가지 차원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중 '자연법'은 오늘날 보편 윤리와 인권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기독교적 유산입니다.
1. 영원법 (Eternal Law)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우주 통치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계획과 이성입니다. 인간의 좁은 지혜로는 이 영원법 전체를 다 알 수 없습니다.
2. 신법 (Divine Law)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알 수 없는 구원과 천국에 관한 진리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신 법입니다. (예: 성경, 십계명, 산상수훈). 신법은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줍니다.
3. 자연법 (Natural Law)
아퀴나스 공공 윤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법의 일부를 모든 인간의 본성(이성과 ) 속에 각인시켜 놓으셨습니다. 이를 자연법이라고 합니다.
자연법의 제1원리: "선을 행하고 추구하며, 악을 피하라 (Do good, avoid evil)."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불신자라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적 직관을 통해 생명을 보존해야 하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타인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 적용] 자연법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공공의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보편적 도덕의 플랫폼'을 제공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동의하는 '세계인권선언'이나 '살인 금지법' 등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연법적 이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공공선의 산물입니다.
4. 인정법 / 실정법 (Human Law)
자연법의 일반적인 원리들을 구체적인 사회 현실과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국가가 제정한 실정법(예: 도로교통법, 세법, 형법)입니다.
아퀴나스의 경고: 실정법은 반드시 자연법(하나님의 질서)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국가의 법이 자연법을 거스르는 악법(예: 나치의 유대인 학살법, 노예법)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법이 아니라 '폭력(Corruption of law)'이며, 그리스도인은 이 악법에 복종할 윤리적 의무가 없습니다.
[표 1]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국가관 및 윤리 사상 비교
| 비교 기준 | 어거스틴 (St. Augustine, 5C) | 토마스 아퀴나스 (St. Thomas Aquinas, 13C) |
|---|---|---|
| 철학적 배경 | 플라톤주의 (Platonism) | 아리스토텔레스주의 (Aristotelianism) |
| 국가(정치)의 기원 |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 | 타락과 무관한 인간의 자연적 본성 (사회적 동물) |
| 국가의 주된 기능 | 억제적 기능: 죄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 (필요악) | 적극적 기능: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고 공공선을 증진 |
| 자연(이성)과 은혜 | 타락으로 인한 이성의 철저한 부패 강조 |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이성의 긍정) |
| 대표적인 기여 | 두 도성 이론, 정당 전쟁론의 기초 확립 | 자연법 이론 확립, 기독교 신앙과 이성의 완벽한 종합 |
| 역사적 의의 | 로마 멸망의 혼란 속에서 교회의 정체성 확립 | 중세 전성기의 안정된 기독교 세계관과 공공 질서 구축 |
In short
- 어거스틴은 《신국론》에서 인류를 '자기 사랑'에 근거한 지상의 도성과 '하나님 사랑'에 근거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구분하고, 국가를 죄를 억제하는 필요악으로 규정했다.
- 어거스틴의 정당 전쟁론은 정당한 원인, 합법적 권위, 올바른 의도라는 세 조건을 통해 폭력을 제한하려는 기독교적 공공 윤리의 산물이며 오늘날 국제법의 기초가 되었다.
- 아퀴나스는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명제로 신앙과 이성을 통합했고, 영원법·신법·자연법·인정법의 네 가지 법 체계를 제시했다.
- 자연법은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보편적 도덕의 플랫폼을 제공하며, 자연법에 위배되는 실정법은 복종의 의무가 없는 '폭력'으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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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and discussion
- 정당 전쟁론의 현대적 딜레마: 어거스틴의 '정당 전쟁론'의 조건(정당한 원인, 합법적 권위, 올바른 의도)을 현대의 복잡한 분쟁 상황에 대입해 봅시다. 예를 들어, 자국민을 학살하는 타국의 독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강대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인도적 간섭)은 기독교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만약 핵무기가 동원되는 현대전이라면 '올바른 의도(사랑)'라는 조건이 성립될 수 있을지 토론해 보십시오.
- 자연법과 악법에 대한 불복종: 토마스 아퀴나스는 "실정법(국가의 법)이 자연법(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날 경우, 그것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며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근현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악법에 저항한 사례(예: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등)를 찾아보고,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이 정당성을 얻기 위한 성경적, 자연법적 기준은 무엇일지 정리해 보십시오.